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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IFUL CITY & LIFE
경주 테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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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도시 경주의 조선 건축 여행
건축은 기억의 보고다. 당대 삶의 모습을 구현하고 사상을 담는다.
사학자가 아니라도 우리는 유물을 발굴하듯 건축을 보고, 공간이 가졌을 시간을 탐미해 볼 수 있다.
신라 도시로 알려진 경주에도 조선의 이름으로 살아가던 시대가 있었다. 조금은 낯선 경주의 시간을 걸어보자.
조선의 집, 경주 최부자댁
삶을 구성하는 최소단위인 개인과 개인이 만나 가족이 되고 평생에 걸쳐 역사를 만들어내는 ‘집’을 우리는 흔히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선 건축 여행의 첫걸음을 최부자집에서 시작해보려한다.
최부자집은 조선 중기 의병을 일으킨 최진립 장군을 시작으로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경상도 대표 부잣집으로 그들은 세상 얘기를 귀담아듣고 민심을 헤아리기 위해 안마당에 든 과객은 늘 극진히 모셨다. 최부자집 솟을대문을 넘으면 보이는 사랑채는 최근에 복원해서인지 금방이라도 집주인이 사랑채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다.
사랑채를 지나 보이는 안채는 조선시대 양반댁의 전형적인 ‘ㅁ’자 구조로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폐쇄된 구조지만 넓게 지어 집안 여인들이 조금이나마 답답함을 해소하게 했다. 이 중 최부자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곳간이다. 쌀 800석이 들어갈 정도로 큰 규모의 곳간은 과거 일곱 채나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만 남았다. 당시 풍년에는 곳간을 채워두고 흉년에는 그 문을 열어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했다.
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마지막 만석꾼인 최준은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사용했다. 이렇듯 최부자댁은 사회고위층이 가져야 할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을 집에 새겨 지금도 널리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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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 최부자댁
<주소> 주소 경북 경주시 교촌안길 27-40
<운영시간> 운영시간 09:30~17:30 / 매월 마지막 월요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무
조선의 학교, 경주 향교
최부자댁은 교촌에 있는데 교촌은 향교가 있는 마을을 말한다. 경주 향교는 유현(儒賢)들의 위패를 모시고 유생들이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니 몸을 낮춰 지었다.신라 신문왕 때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세워졌고 고려에는 향학, 조선에는 향교로 이어졌는데 교육기관의 역할을 이어온 유서 깊은 자리인 셈이다.
향교 정문인 외삼문을 지나 상용문으로 들어가면 우물을 하나 만날 수 있다. 이 우물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는데 설총이 이 물을 마시고 대학자(大學者)가 되었다고 해서 ‘총명수’라 부른다. 아쉽게도 지금은 짠맛이 나는 탓에, 선조들이 앞다투어 마셨을 총명수 물은 맛볼 수 없다.
향교 대성전에는 공자와 유교 5성, 유교에 이바지한 바가 큰 원효와 설총의 위판을 봉안하고 있다. 영혼이 통과한다는 내삼문 중간에 서서 대성전을 바라보면 선현들의 가르침이 배움의 터인 명륜당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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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 경주 향교
<주소> 주소 경북 경주시 교촌안길 27-20
<운영시간> 운영시간 09:00~18:00
조선의 성, 경주읍성
집과 집이 모여 부락을 이루고 이 부락은 유기체와 같아서 때론 사라지고 문득 다시 세워진다. 경주읍성이 그렇다. 신라 시대는 월성이 중심이었다가 고려 때 지금 자리에 민가가 많이 생겼다.
지방 행정의 거점이자 정치적 중심지로 삼으면서 고려 때는 동경유수관(東京留守館)이, 조선시대에는 경주부아(慶州府衙)가 만들어졌고 마을 주변으로 평지성도 쌓았다. 고려 현종 3년(1012)에 토성으로 지어져 천년 역사를 담고 있는 읍성은 마지막 모습인 조선 시대 읍성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거대하고 든든한 석벽으로 동문인 향일문과 100미터가량 남아있던 성벽을 복원했다. 때 묻지 않은 성벽을 보자니 지어질 당시 모습이 그려진다. 무너진 돌무더기 한쪽에 울창한 고목의 그늘은 옛 선인의 땀도 훔쳐줬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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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 경주 읍성
<주소> 경북 경주시 동문로 31
<운영시간> 24시간
조선의 마을, 양동마을
읍성에서 차로 20분 남짓 달리면 양동마을을 만난다. 도성 밖에 있는 반촌(班村)이다. 양동마을은 한국건축에서 최상의 입지 조건으로 꼽는 ‘배산임수’로 마을에 들어서면 명당의 기운이 느껴진다.
유교에서 말하길, 뛰어난 인물은 땅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다고 하는데 허언은 아닌 듯하다. 마을에 터를 잡은 손소 선생을 비롯해 이조판서를 지낸 우제 손중돈 선생, 조선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 선생까지 양동마을 출신이다.
한자 물(勿) 형세인 마을은 언덕바지에 가문 종택이, 그 아래 양반 가옥이 있고 하인들이 거주하는 초가집이 두르고 있다. 덕분에 조선 가옥의 전모를 보는 재미가 있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은 송첨 종택(서백당)이다. 마당에 550년을 훌쩍 넘긴 향나무가 고택과 역사를 같이 하고있는 서백당은 유교 이념이 정착되지 않은 조선 초기에 지어져 남녀 구분없이 별채와 사랑채가 하나의 공간에 있다.
양동마을은 산실방도 유명한데 앞서 말한 두 성현이 모두 이곳에서 태어났다. 우재 손중돈 선생의 관가정, 회재 이언적 선생이 중종에게 하사받아 지은 향단, 회재 부친이 기거한 무첨당과 가문을 대표하는 경산서당 등 의미있는 건축물이 많아 걸음을 아껴가며 관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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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 양동마을
<주소>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길 134
<운영시간>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길 134
조선의 별당, 독락당
회재 이언적 선생은 중종 때의 성리학자 이자 문신으로 당쟁에 휘말려 고향인 경주 양동마을에 독락당을 짓고 은둔생활을 보낸다.‘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집’이라는 당호만 봐도 중앙정치의 고단함이 전해진다.
사랑채인 옥산정사의 현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자인 퇴계 이황의 글씨다. 살창을 설치한 토담을 따라가면 자계천에 난간을 내밀어 만든 정자 계정(溪亭)이 나타난다. 반듯하게 닿은 바닥에 앉으면 실개천 물소리가 소란스럽다.
나른하게 뉜 너럭바위와 풍요로운 숲을 보자니 자연과 벗이 되어 외롭지 않았을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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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 독락당
<주소> 경북 경주시 옥산서원길 300-3
<운영시간> 운영시간 24시간 (내부 관람은 정해진 시간 없음)
조선의 사설 교육기관, 옥산서원
조선시대 뛰어난 다섯 명의 유학자 ‘동방오현’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회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제향코자 지어진 옥산서원.
옥산서원에는 대회를 열지 않고서야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귀한 글씨들이 모여있다. ‘벗이 찾아 오니 기쁘다’는 역락문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이고 회재 선생의 성리학 저서인 ‘구인록’에서 따온 강당 구인당에는 ‘옥산서원’이라 쓴 두 개의 편액이 있는데 정면에 있는 것은 추사 김정희, 대청 전면 것은 아계 이산혜의 글씨다.
거기에 경치가 가장 좋은 계곡 바위에 퇴계 이황이 쓴 ‘세심대’까지 있으니 말이다. 명필의 글씨와 함께 서원 앞 흐르는 물소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소리를 들으며 이곳에 학문에 정진했을 군자들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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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 옥산서원
<주소> 경북 경주시 옥산서원길 216-27
<운영시간> 4~9월 09:00~18:00 / 10~3월 09:00~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