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에도 향과 소리가 있다. 눈이 부신 물빛 하늘과 시폰 커튼 사이로 스미는 정오의 태양 빛,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가 모든 감각을 깨울 때, 비로소 여름이 왔음을 느낀다. 그리고 스크린 속 해변가의 파도가
밀려들며 여름의 한가운데로 우리를 이끈다. 이 열기와 냉기가 뒤섞인 감성에 흠뻑 젖어버리고 싶다.
올여름, 청량함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 10편을 감상해 보자.
로컬 드라마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공동체적으로 묶으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과 애정을 기반으로 재미를 극대화한다. <갯마을 차차차> 역시 로컬 드라마의 장점을 활용한 작품이다. 시골 바다마을 ‘공진’이라는 가상의 지역 사람들에 대한 삶을 연쇄적으로 보여주면서, 삶의 공간과 켜켜이 쌓이는 시간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치과의사 윤 선생과 홍 반장은 서로 너무 달랐지만, 그 ‘다름’으로 인해 이끌리게 된다. 드라마 속 공진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 속 마을이다. 마치 문학 소설 ‘무진기행’ 속 ‘무진’처럼 향수를 자극하는 이상 공간이지만 두 작품의 결말은 다르다. 윤희중은 무진을 떠나왔지만, 윤선생은 공진에서의 홍반장과의 삶을 택했다.
2021년 여름을 잔잔하게 달구었던 <갯마을 차차차>는 자극적인 이야기에 지쳐버린 이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줬다. 우리는 평화로운 드라마를 통해 또 다른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바라보며 위로받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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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귀신’이라고 하면 공포물에나 나올 법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가진 처녀 귀신이라면 어떨까? 박보영의 연기력으로 화제가 된 <오 나의 귀신님>은 억울하게 죽은 처녀 귀신 ‘순애’가 ‘봉선’의 몸에 빙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죽었지만 저승에 가지 못하는 이유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한’ 때문이라고 믿는 귀신이 ‘봉선’을 통해 같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스타 셰프 ‘선우’에게 직진한다. 소심한 성격의 봉선은 평소 짝사랑하던 선우에게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붙이지 못했고, 선우 역시 이성적인 매력이라곤 느껴보지도 못한 봉선의 적극적인 대시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외향과 내향을 오가는 두 가지 반전 매력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처럼 드라마는 판타지, 로맨스, 미스터리 세 요소를 적절히 활용했다.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순애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끝까지 끌고 가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들었다. 한 여름밤 정주행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귀신에게 홀린 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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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군중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보며 세상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고 나보다 나은 누군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한 드라마로 주인공이 타고난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여고생 단오가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고 사랑을 이뤄내는 학원 로맨스물이다. 단오는 어느 날 문득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가 순정 만화 속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단오는 만화 속 설정값이 아닌 자아를 찾게 되며 점차 자신의 삶에서만큼은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 단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다.
내가 누군가의 엑스트라이자 조연이 되는 것 같은 순간, 생각을 전환하면 나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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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과거의 어느 한 계절을 떠올리면 언제나 매미 소리가 들리는 여름이다. 한 작품을 통해 가슴 속에 있는 첫사랑의 추억을 소환하고 없던 학창 시절을 만들 수 있을까. <그해 우리는>을 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악연이 이어진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질긴 인연인 셈이다. 초여름의 풋풋함과 청량함을 느낄 수 있는 이 드라마는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이 함께 촬영했던 다큐멘터리가 10년 뒤 역주행을 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다.
10년 후의 성장한 우리가 10년 전으로 돌아가 지금을 돌아본다면 많은 것이 변해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우리의 감정은 그 자리에 있을까. 과거의 그림자는 기억의 저편에 가려져 있다가 불시에 성큼 다가와 말을 걸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잊고 있던 버려진 기억의 파편들을 찾고 싶다면 ‘그해 우리는’ 어땠는지 함께 기억을 더듬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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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같은 마음을, 같은 온도를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애틋해질 때가 있다. 조금 더 정제되고, 더 성숙해졌다 해도 어째서 첫사랑을 떠올리는 것은 한결같이 어지럽고 정돈되지 않은 마음일까?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먹먹하고 뭉클한 이야기들을 가득 안고 있다. 보통 일반적인 로맨스물은 여자 주인공의 관점에서 전개되지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는 상처로 가득한 남자 주인공 이진이 희도를 만나 어떻게 인생이 변화하는지가 핵심이다. 이진과 희도는 서로 달랐기에 더 끌렸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위로한다. 비극을 받아들이고 살아온 이진에게, 비극을 희극으로 덮어주는 희도의 존재가 빛났으리란 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를 할퀴고 간 또 다른 비극, 9.11테러로 인해 그들의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너무나 달라서 사랑했고, 다르기 때문에 헤어져야 함을 이진과 희도의 삶을 통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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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게 되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뜨겁게 타오르는 청춘들의 연애사를 살펴보고 싶다면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을 만나보자. 원작자 제니 한이 집필한 ‘여름 3부작’으로 불리는 작품 중 하나다. 첫사랑, 첫 실연, 우리가 겪게 되는 ‘처음’의 기억들은 강렬하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열여섯을 앞두고 있는 ‘벨리’는 매년 여름, 엄마 친구의 별장에서 함께 모여 방학을 보내던 ‘콘래드’, ‘제러마이어’ 형제와 재회한다. 벨리는 어릴 때부터 짝사랑 해온 콘래드에게 다가가 보려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 여름은 이전과는 다르다. 콘래드에게 한발 다가가려고 하면 두발 훌쩍 다가오는 제러마이어에 사랑의 방향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두 형제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에 보는 이마저 함께 몰입하게 만들며 마음이 갈대같이 흔들린다.
빈티지한 색감의 영상미로 여름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으며 청량한 OST까지 챙겨서 귀를 즐겁게 한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하이틴 감성을 오랜만에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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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사는 ‘서머’는 학교에서 퇴학당한 문제아 소녀다. 서머의 엄마는 그녀를 호주의 소도시 쇼어헤이븐에 보내버린다. 반항심 넘치는 서머는 언제든 뉴욕으로 돌아갈 궁리만 가득한데, 어쩐지 이곳은 자신이 살던 도시와는 다른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곳에서 서머와 동갑인 서핑선수 ‘아리’를 만나게 되며 재미없고 떠나고만 싶었던 호주가 새롭게 다가온다. 선수 생활을 하다 다친 이후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아리를 도와주며 서핑 선수들과 어울리며 정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서핑 능력이 뛰어나지만,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포피’, 아리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말런’, 서퍼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보디’의 이야기까지 각자의 사연을 서핑이란 소재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자연스레 점점 녹아드는 서머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즐겁다. 서핑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호주의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여름에 보기 좋은 호주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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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라는 뜻의 대만 드라마 <상견니>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벌어지는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다. ‘상친자(者)’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을 정도로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 주인공 ‘황위쉬안’은 타임슬립을 하며 과거에 죽은 자신의 연인 ‘왕취안성’과 똑같이 생긴 남자 ‘리쯔웨이’를 만나게 된다. 타임슬립으로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해결하며 서로의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큰 줄기이다. 작은 단서 하나조차 너무나 소중한 퍼즐 조각이라 말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작품, 상견니. 시공간을 떠돌며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동시에 바꾸려 했던 애틋한 리쯔웨이의 서사는 눈물샘까지 사로잡는다.
첫사랑은 흔한 소재지만 <상견니>는 기존 세계의 인물이라는 다른 내러티브에서 소외당하는 인물에 주목함으로써 흔한 소재를 새롭게 변형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에서 눈을 뜨고, 누군가를 그리워하지도 않아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다시 우리의 사랑은 이어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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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눈치를 본다’는 말은 일본에서는 ‘공기를 읽다’라고 표현한다. 주인공인 ‘나기’는 항상 공기를 읽으며 타인에게 맞춰 살아온 인물이다. 나기를 험담하고 주눅 들게 했던 전 애인은 공기 청정기를 판매하는 회사에 다니는 남자였다. 그는 공기 청정기를 ‘얼어붙은 공기’를 풀어주는 제품이라 표현했는데, 이런 단편적인 설정만 봐도 작가가 의도한 연출이 느껴진다. 더운 여름, 나기는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해 겉돌았던 회사에 사표를 쓴 뒤 봇짐을 짊어지고 시골로 내려간다.
떠난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겨우 얻은 방은 한 칸짜리 싸구려였지만, 이곳에서 유대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일, 함께 음식을 만들며 시간을 나누는 일, 여태껏 습관처럼 공기만 읽으려고 하던 나기가 이제는 솔직하게 마음을 고백 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은 나기의 변화를 응원하고 조용히 기다려 준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위로받는다는 말을 <나기의 휴식>을 보며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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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후회되고 되돌리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그래서 내 의지로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타임 리프물이 사랑받는 게 아닐까?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츠츠이 야스타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드라마화 되었다. ‘쇼헤이’는 여름이 없고 겨울만 있는 100년 후의 세상에서 2017년의 여름을 조사하러 온 미래인이다. 지구를 조사하던 중, 고등학생 ‘미하네’와 부딪히며 미래로 돌아가는 약을 잃어버리고 만다. 어느 날 미하네는 자기가 타임리프 능력을 얻게 된 것을 알게 된다. 쇼헤이는 그런 미하네의 주위를 맴돌며 미래로 돌아갈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며 가랑비에 옷 젖듯 22세기에는 없는 21세기의 사랑을 배우게 된다. 시간을 넘나들며 한겹 한겹 비밀에 가까워지며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시간을 얻게 된 사춘기 소녀와 시간을 잃은 미래인은 어떤 여름을 보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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