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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무언가를 오래 지키기 위해 땅을 다뤄 온 도시다. 봉분 아래에는 왕의 부장품이, 빙실 아래에는 한여름의 얼음이, 바다 아래에는 한 임금의 뜻이 묻혔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무언가를 변하지 않게 지킬 수 있는가'를 설계해 왔다.
그리고 같은 땅 위에, 지금 가장 긴 보존을 약속한 시설이 들어섰다. 방사성폐기물을 수백 년 동안 안전하게 격리해야 하는 처분시설이다. 경주의 땅이 오래 익혀 온 보존의 지혜와, 오늘의 기술은 생각보다 가까이 닿아 있다.
겹겹이 감싸 봉하다,
천마총
1973년 발굴된 천마총에서는 천마도를 비롯해 1만 1천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놀라운 것은 그 가운데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천마도 같은 약한 재료가 1,500년을 견뎌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비결은 구조에 있었다. 적석목곽분은 시신과 부장품을 넣은 나무 덧널(목곽) 위에 돌을 쌓아 적석부를 만들고, 그 위를 다시 흙으로 봉해 봉토와 호석으로 마감하는 다층 구조다. 나무를 돌이 감싸고, 돌을 흙이 감싼다.
여러 겹의 방벽이 외부의 공기와 물, 도굴의 손길을 차단하며 안쪽을 지켰다. 여러 겹으로 감싸 시간으로부터 지킨다는 발상은, 2단계 표층처분시설의 5중 다중차단구조와 정확히 같은 원리다. 드럼을 뒷채움이 감싸고, 처분고가 감싸고, 덮개와 암반이 다시 감싼다. 천 년 전의 봉인과 오늘의 차단은,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적석목곽분의 또 다른 힘은 '스스로를 지키는' 구조에 있다. 드나드는 입구가 따로 있는 굴식 돌방무덤과 달리, 목곽 위에 수만 개의 강돌을 쌓아 올린 탓에 위에서 파 내려가려 하면 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도굴꾼이 갱도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신라의 적석목곽분에서 금관과 유물이 온전히 쏟아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 천마총 역시 천오백 년 동안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채 1973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은 이 무덤을 허무는 대신 더 단단히 다졌다. 안쪽의 나무 덧널이 서서히 썩어 내려앉으면, 위에 얹힌 돌과 흙이 그 자리를 메우며 한층 촘촘해진다. 사람이 손대지 않아도 구조 그 자체가 침입을 막고 시간을 견딘 것이다.
처분시설이 지향하는 안전도 이와 닮았다. 누군가 끊임없이 관리하지 않아도, 드럼과 처분고와 암반이라는 여러 겹의 차단이 제자리에서 스스로 제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다. 가장 믿을 만한 봉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견고해지는 봉인이다.
형식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
축조 6세기 초(신라)
규모 지름 47m · 높이 12.7m
발굴 1973년 / 출토 유물 약 11,500점
가장 귀한 것을, 가장 깊이 봉하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기려 동해변에 감은사를 세웠다. 682년,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려 한 임금의 뜻을 받든 호국의 절이었다. 절집은 오래전 사라졌지만, 옛 금당 앞에 나란히 선 두 기의 삼층석탑은 천 년을 버텼다. 그리고 1959년 서탑을, 1996년 동탑을 해체·수리하던 중, 탑신 속 작은 사리공(舍利孔)에서 통일신라 공예의 정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사리장엄구다.
사리장엄구는 '겹겹이 감싸는' 구조의 정점이다. 가장 안쪽, 손가락만 한 수정 사리병(높이 약 3.7cm)에 사리를 담고, 그 병을 궁전을 닮은 전각형(殿閣形) 사리기가 감쌌다. 사리기는 다시 사각의 외함 속으로 들어가는데, 외함의 네 벽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이 사리를 호위하듯 새겨졌다. 그리고 이 모두를 13미터 화강암 석탑이 품었다. 수정에서 금동으로, 다시 돌로. 물성이 다른 차단이 층층이 겹치며 하나의 봉인이 완성됐다.
가장 귀한 것을 한가운데 두고, 그 둘레로 보호를 집중시킨 설계였다. 사천왕과 사자, 승상과 작은 부처(化佛), 주렁주렁 드리운 영락 장식까지, 모든 정성은 결국 중심의 사리 하나를 향한다. 그렇게 봉인된 사리는 천삼백 년을 건너 온전히 우리 앞에 도착했다. 가장 귀한 것을 여러 겹으로 감싸 시간으로부터 지켜낸 신라의 방식은, 가장 위험한 것을 여러 겹으로 감싸 미래로부터 격리하는 오늘의 처분 방식과 같은 원리에서 출발한다. 무엇을 지키든, 오래 지키는 법은 결국 겹겹이 감싸 봉인하는 일이었다.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국보 제112호·높이 약 13.4m·682년(신문왕2)무렵
서탑 사리장엄구 1959년 발견 · 보물 제366호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동탑 사리장엄구 1996년 발견 · 보물 제1359호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봉인 구조 수정 사리병 → 전각형 사리기 → 사천왕 외함 → 화강암 석탑
겨울을 가두다,
석빙고
한여름에도 얼음을 지켜낸 시설이 있었다. 경주 석빙고는 반지하의 화강암 홍예 구조로, 바닥 중앙의 배수구와 천장의 환기 구멍을 갖췄다. 지붕은 바깥쪽을 단열에 강한 진흙으로, 안쪽을 화강암으로 만든 2중 구조였고, 얼음 사이에는 왕겨와 짚을 채워 외부 공기를 차단했다.
아래는 넓고 위는 좁은 환기구는 더운 공기를 빠르게 빼내도록 설계됐다. 외부 환경을 차단하고 내부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점에서, 석빙고는 처분시설의 먼 조상 격이다.
처분시설은 빗물과 지진, 산불 같은 외부 변수로부터 폐기물을 격리해, 방사능이 자연히 잦아드는 수백 년 동안 안정된 상태를 지킨다. 지키려는 대상만 얼음에서 폐기물로 바뀌었을 뿐, 환경을 다스려 시간을 버틴다는 원리는다르지 않다. 묻어서 지키고, 흐르게 해서 지키고, 가두어서 지킨다. 경주의 땅이 천 년 동안 익혀 온 보존의 문법은, 이제 가장 긴 책임을 짊어진 시설로 이어지고 있다.
축조 조선 영조 14년(1738) / 보물 제66호
규모 길이 18.8m · 너비 5.94m · 홍예 높이 4.97m
장빙 전통 신라 지증왕 6년(505) 『삼국사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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