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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처음으로 내세운 방폐장 후보지가 안전성 문제로 좌초되면서, 관리정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굴업도 방폐물 입지 갈등은 단순한 부지선정 실패가 아니라, 방사성폐기물 관리체계 전반을 재검토해야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가을호에서는 그 이후 전개된 정책 변화와 사회적 갈등, 그리고 부안 핵 폐기장 반대운동으로 이어진 격동의 시기를 조명하며, 오늘날 관리정책이 어떤 토대를 거쳐 다듬어졌는지를 되짚어보려 한다.
<굴업도 무산과 관리체계의 전환>
1994년 정부가 최종 후보지로 확정했던 인천 옹진군 굴업도는 정밀 지질조사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부지 지정이 해제되었다.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방사성폐기물 관리체계 자체를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1996년 정부는 관리사업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한국전력으로 이관하고, 전담기구로 원자력환경기술원을 출범시켰다. 같은 해 개정된 원자력법과 전기사업법은 안전규제를 강화하고, 기존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을 폐지하는 대신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을 신설했다.
새로운 관리체계는 단기적으로는 부지 확보와 기술 확보, 장기적으로는 종합적인 저장·처분 체계 구축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일본·프랑스·스웨덴 등 해외 선진국 사례를 참조하고, 국내 전문가 자문을 거치며 보다 현실적이고 포괄적인 관리대책을 준비했다.
<국가 관리대책 확정과 자율유치 시도>
1998년 9월, 정부는 제249차 원자력위원회 등을 통해 국가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을 확정했다. 일정 계획을 살펴보면 부지확보에 있어서 2003년까지 예정구역 지정, 고시를 마치고 2005년까지 용지매수를 끝낸다는 것으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은 2008년에,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은 2016년에 준공하도록 계획하였다.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한국전력 간 인수인계(1996.12.16)
관계기관 회의(1999.12)
국가방사성폐기물관리대책이 확정됨에 따라 2000년, 정부는 처음으로 전국 46개 임해지역 지자체를 대상으로 ‘자율유치공모’를 실시했다. 공모에 참여할 경우 약 2,127억 원의 지원사업이 보장되었고, 항만·복지시설 등 지역 개발도 함께 추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실제 현황은 달랐다. 영광·고창·진도·울진 등에서 유치 청원이 있었지만 지방의회와 지자체의 반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부 주민 단체는 지역 발전을 위해 찬성했지만, 환경단체와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 여론이 더 강력했다. 결국 자율유치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는 “지역과의 합의 없이 추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남겼다.
<사업자 주도의 후보지 도출과 참여정부 정책>
‘원자력바로알기’ 홍보활동(2001.05)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4개후보지발표 (2003.02.04)
자율유치 공모가 무산되자 정부는 2001년 이후 사업자 주도 방식으로 전환했다. 전문기관 용역을 거쳐 울진, 영덕, 영광, 고창 등 4곳이 후보지로 도출되었다. 그러나 발표와 동시에 해당 지역에서 강력한 반대운동이 일어났고, 지자체도 정치적 부담으로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방폐장 건설을 국가적 숙원사업으로 규정하고 범정부 차원의 추진 체제를 가동했다. 특히 양성자가속기 개발사업과 연계해 방폐장 유치 지역에 3,000억 원 규모의 특별지원금,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대규모 연구단지 조성 등을 약속했다. 위도(부안군)는 이 같은 조건 속에서 최종 후보지로 떠올랐지만, 이는 곧 지역사회 갈등의 폭발로 이어졌다.
<부안 핵 폐기장 반대운동과 전국적 갈등의 확산>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4개후보지발표 (2003.02.04)
2003년 7월 부안군수가 단독으로 유치 신청을 발표하자, 지역사회는 순식간에 대립 구도로 휘말렸다. 주민들은 군수의 결정을 문제 삼으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학생들의 등교 거부와 군수 폭행 사건까지 발생했다. 경찰과의 충돌 속에서 화염병이 사용되고 공공시설이 파손되는 등 폭력 사태로 비화되었다.
정부는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부지선정위원회를 가동하고 위도를 최종 부지로 발표했지만, 반발은 전국적 저항으로 확대되었다. 2004년 2월, 반대 측이 자체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해 72%의 참여율을 기록했으나 법적 효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부안 핵 폐기장 반대운동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이 단순한 기술적·행정적 과제가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함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의 시간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 시기였다. 주민과의 신뢰, 공론화 절차,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수적이며, 이 모든 요소가 갖추어질 때 비로소 국가적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부안 핵 폐기장 반대운동 이후 정부는 주민투표 제도화, 지원사업의 합리적 운영, 중·저준위와 사용후핵연료의 분리 추진 등 제도적 보완에 나섰다. 갈등의 상처는 컸지만, 이는 곧 새로운 정책 전환의 밑거름이 되었다. 2005년 이후 마련된 새로운 절차와 사회적 합의 노력은 바로 이 시기의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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