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경주 어딘가에는 늘 땅속에 잠든 기록이 있다. 1964년 겨울, 황룡사지(皇龍寺址)의 심초석 아래에서 금동 상자 하나가 세상에 나왔다. 가로세로 23.5cm의 작은 금동판들이 경첩으로 이어진 이 상자의 안팎 여섯 면에는 900자가 넘는 글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872년, 황룡사 구층목탑을 다시 세우면서 학자 박거물(朴居勿)에게 명하여 탑의 창건 경위와 중수 내력을 기록하게 한 것, 이것이 바로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金銅刹柱本記)」다.
제작 872년(경문왕 12) / 보물 제1870호
재질 금동판 6면, 총 74행 900자 이상
기록 내용 탑 창건·중수 경위, 규모 수치, 참여 인원
소장 국립경주박물관
찰주본기가 담은 것은 단순한 건축 기록이 아니었다. 645년 완공 당시 탑의 높이가 탑신 183척, 상륜부 42척으로 합계 225척(약 80m)에 달한다는 수치가 명시되어 있고, 탑이 동북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경위, 재목을 모아 중수를 준비하는 데 30여 년이 걸렸다는 사실, 공사를 주관한 관리와 승려들의 이름이 조목조목 새겨져 있다. 무엇을, 왜, 어떻게 지었는지—그리고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고쳤는지를, 신라의 장인들은 후대를 위해 금속에 새겼다. 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탑은 불탔다. 그러나 심초석 아래 봉안된 금동 상자는 화마를 견뎠다. 거대한 탑이 무너지는 동안, 땅속의 기록은 살아남아 오늘날 국립경주박물관에 보물 제1870호로 소장되어 있다. 구조물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다. 신라인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찰주본기가 '기록의 지혜'를 보여준다면, 경주 탑동의 나정(蘿井)은 '설계의 지혜'를 말한다. 나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강처(誕降處)로 전해지는 우물 유적이다. 오랫동안 작은 유허비 하나만 서 있던 이 자리에서, 2002년 담장 보수 공사를 위한 발굴 도중 예상치 못한 구조물이 드러났다. 한 변 8m, 지름 20m에 달하는 거대한 팔각형 건물의 초석 50여 개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4차례 발굴을 거쳐 우물지, 담장지, 부속 건물지까지 확인되었고, '生(생)'자가 새겨진 기와 90여 점도 함께 출토되었다. 연구자들은 이 팔각건물이 7세기 후반 문무왕 대에 조성된 신궁(神宮), 즉 신라 왕실 최고의 제의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주목할 것은 팔각이라는 형태다.
신라는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제사를 지냈던 이 신성한 땅에 원형도 사각형도 아닌 팔각의 건물을 선택했다. 팔각형은 방위와 균형, 하중 분산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형태로,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정밀한 공간 계산의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외곽에 사각형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팔각 건물을 배치한 구조는, 자연의 흐름과 인위적 경계를 동시에 설계한 신라 특유의 공간 감각을 보여준다. 전설의 땅에 세워진 이 건물은, 신화와 공학이 조용히 만나는 자리였다.
위치 경북 경주시 탑동 (사적 제245호, 1975년 지정)
발굴 2002~2005년, 총 4차 발굴 조사 (중앙문화재연구원)
팔각건물지 한 변 8m, 지름(동서·남북) 각 20m, 초석 50여 개 우물지, 담장지(한 변 약 50m), 부속건물지 등
* 황룡사지 복원사업은 중저준위 처분시설 유치지역 일반지원사업(55개) 중 하나로 선정되어 진행 중인 사업입니다.
기록하고 설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라는 또한 끊임없이 관측했다. 선덕여왕 때 세워진 첨성대(瞻星臺)는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천문 관측 시설이다. 362 개의 화강암 석재를 빈틈없이 쌓아 올린 높이 9.5m의 이 구조물은, 단순해 보이는 외형 안에 정밀한 계산이 촘촘히 박혀 있다. 접착제 없이 돌과 돌만을 맞닿게 해 27단을 쌓는 과정에서, 각 단의 돌 하나하나는 곡선과 수평, 수직을 동시에 맞추도록 개별적으로 다듬어졌다. 2016년 경주 지진 당시 규모 5.8의 강진에도 첨성대가 2cm 기울어지는 데 그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단을 놓기 전 땅을 깊게 파고 흙과 돌을 번갈아 다진 지반 보강, 안쪽으로 들여쌓는 원형 곡선 구조가 이미 내진(耐震)의 원리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첨성대의 더 중요한 유산은 구조물 자체보다 그것이 만들어낸 기록의 습관에 있다. 첨성대가 세워진 이후 신라의 천문 관측 기록은 이전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일식, 혜성, 행성의 움직임, 유성의 낙하 위치까지 정밀하게 기록된 신라의 천문 기록은 오늘날에도 고천문학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활용된다. 신라는 하늘을 읽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체계를 만들었다. 관측이 기록되고, 기록이 역사가 되는 순환. 그것이 신라 과학의 핵심이었다.
건립 7세기 중엽 선덕여왕 대 / 국보 제31호
규모 화강암 362개, 27단, 높이 9.5m
설계 특징 접착제 없는 곡선 쌓기, 지반 다짐 내진 구조
세 유산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신라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다룰 때, 반드시 세가지를 함께 했다. 정밀하게 설계하고, 빠짐없이 기록하고, 지속적으로 관측했다. 그것은 거대한 탑을 세우는 일에서도, 시조의 성소를 조성하는 일에서도, 하늘의 움직임을 읽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세 가지가 모두 갖춰졌을때, 기록은 천 년을 넘어 살아남았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경주에서 하는 일도 같은 구조를 가진다. 2단계 표층처분시설은 1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반 조사와 구조 설계를 끝으로 곧 운영을 앞두고 있다. 올봄 본격 가동을 시작한 방폐물 분석센터는 방사성폐기물 한 드럼 한 드럼의 핵종 조성을 직접 분석하고 그 결과를 데이터로 남긴다. 방폐물추적관리시스템(WTS)은 폐기물의 발생 시점부터 최종 처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이력을 하나의 체계로 잇는다. 설계하고, 기록하고, 관측하는 일이 오늘의 경주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찰주본기의 900자가 870년 뒤의 연구자에게 황룡사를 증언했듯, 지금 이 시설에 쌓이는 데이터들도 언젠가 후대의 누군가에게 이 땅의 안전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 기록은 그렇게, 시간을 건넌다.
-
본사주소. [38062]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천길 19 (서악동)
대표전화. 054-750-4114
COPYRIGHT ⓒ KORAD. ALL RIGHT RESERVED.